불교의 전래   2012-03-01 (목)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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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불교


고구려의 불교 전래는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의 왕 부견이 보낸 순도에 의해서 비롯되었다. 이어 동왕 4년에 아도가 입국하였으며, 곧 초문사와 이불란사가 건립되면서 장려되기 시작하였다.




백제의 불교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에 동진으로부터 마라난타에 의해서 전해졌으며 곧 한산에 사찰이 건립되어 국가적으로 장려되었다. 역시 국가적인 필요성에서 받아들인 것이며 남조와 관계가 깊은 백제로서는 그곳으로부터 승려를 맞아들여 그 포교에 노력하게 되었다.




신라의 불교


신라는 사회적인 후진성에서와 같이 불교의 전래에 있어서도 가장 늦었으며 5세기 눌지왕때에서야 고구려의 묵호자(아도)에 의해서 전하여졌다.

그는 고구려 백제의 경우와 달리 개인적으로 입국하여 경상도 일선군(지금의 선산) 모례집에서 포교를 시작하였으나 강인한 원시 신앙과 배타성으로 거부되었다.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 송의 사절인 원표에 의해서 왕실에 불교가 전래되었고 차차 민간으로 침투되었으나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커다란 시련을 겪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차돈의 순교로 완강한 귀족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법흥와 14년(527)에 공인되었고 홍륜사가 건립되면서 불교는 왕실의 보호 속에서 발전되었다.



불교 전래의 영향


불교가 남긴 영향은 곧 한국 불교의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나라 사회가 요구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불교가 남긴 영향은 첫째, 불교가 고대국가의 사상적 이념이 되었다는 점이다. 불교는 원시적 다신교나 샤마니즘 등 일체의 신앙을 초월하는 고대국가의 정신적 배경으로 도입되어 왕권의 강화와 신성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삼국의 왕실이 불교 수용에 선도적 역할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아가서 국민사상의 통일은 물론, 의식과 사유의 개발에 커다란 역할을 다 하였다.

둘째, 불교는 호국적인 사상이 된 점이다. 왕실 귀족 중심의 또는 위로부터의 전래와 장려는 자연히 불교의 호국관과 통합케 되었고 사찰의 명칭이 불국(佛國) 흥국(興國) 왕륜(王輪) 등으로 붙여진 것도 불교가 국가 민족 수호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백좌 강회와 같은 불교 행사나 고려 때의 팔만대장경 임진란 때의 의병 활동도 근본적으로 호국신앙의 표시였다.

셋째 불교는 예술과 학문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찍이 불교는 한문과 불상등 중국 문물을 함께 전해주어 한문화의 전래에 근본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아니라 불상 조각 건축 등 한국의 예술에 위대한 영향을 남겼다. 현재 한국의 국보가 거의 불교와 관계있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또한 불경의 도입과 간행은 인쇄술의 발달을 가져왔음도 부인할 수가 없다.




어린이 여러분!

불교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거쳐 오면서 호국적인 사상과 배경으로 전래되어 국가 민족 수호의 정신적 바탕이 되었으며 민족의 살과 피가 되고 거름이 되어 민족문화를 길러왔습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은 불교와 관련있는 보물과 국보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1995년 12월에 팔만대장경과 석굴암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음을 볼 때 우리 불교가 세계적으로도 널리 인정받고 있음을 잘 알 수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불교 발전에 노력하고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불국토 사상 
조계종 교구본사